「息子さんは、本当にたくましいですね」 笑みを浮かべて 2 階の家の女性に話しかける 渡辺さんに驚いた。 まわりの人たちに迷惑 をかけている太一君がたくましいなんて太 一君が投げたおもちゃに当たって、まどかち ゃんとみどりちゃんが泣いたのに,たくまし いなんて.... 私は我慢できず、「お子さんが友達を苦しめ たら,お母さんが注意してください! 」と言ってしまった。
他人の息子を叱るのも,お 互いに耳が痛い話をするのも、嫌なことだが,それが正しいことだと思ったからだ。 その後も、腹が立った時でも,いい気持ちがしない状況の中でも、柔らかく,良い面 だけを取り上げて表現する日本人をたくさん見た。 「日本人は、心の中が分からな いと言っていたが,建前というのはこんなものなんだね! 」 表と裏が違うのは二重人 格者であり,純粋ではないと思っていた私も彼らがしているように私の本心を隠し始 めるようになった。
結婚と同時に始まった日本生活が 10 年をはるかに越えている。
家族や友達と離れ て生活する外国生活が寂しく,疲れるときも多かったが,そのような苦労があってこそ 成長することができた。 その成長の一つが文化に対する理解だ。 否定的にしか思わなかった建前を多くの経 験を通して理解するようになった。
建前の本質は本心を隠すのではなく,相手を傷つ けまいとする配慮だということを、自然に悟ったのだ。
そういえば,あの時,太一くんのお母さんは渡辺さんの話を聞いてすぐ息子を制止した。
私は彼女の話をただ状況にそぐわないほめ言葉としてしまったが。外国人である私は 私の方式で理解して,彼らは彼らのやり方で疎通したのだ。
「お会いできてうれしいです。ところでいくつですか? 」 韓国人は初めて会った人に歳を聞く。
「何年生まれですか?」、 「大学は何年に入りましたか?」 直接的でない表現もあるが,結局,相手の年齢が知りたいということだ。
日本では「初 めて会った人に歳を聞くなんて···失礼だ」と思う人は多いようだが,儒教思想を基本とする韓国人にとって齢というのは関係を 規定する重要な要素なのだ。
私より年上か年下かによって呼び方が変わ り,語法も変えなければならない。
数秒間 隔で生まれた双子同士も上の子を決め,呼 称を変えるほどだ。 このような社会的背景が分かれば,初めて会った時に年齢を問う韓国人の無礼さを理 解す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
東京オリンピックが目前に迫っている。 韓国周辺のどこからでも外国人に見られ,ネ ットを通せば,いつでも世界各国の友人を作ることができる。
そのためには,言語に 対する勉強はもちろん,文化を理解するための努力が必要だ。 知れば知るほど感じる ことができ,感じてこそ一緒に共有できるからだ。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몇 살이세요?」
「아드님이 참 씩씩하네요」 미소 지으며 2 층 집 여자에게 말을 건네는 와타나베상에게 깜짝 놀랐다.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다이치군이 씩씩하다니…. 다이치군이 던진 장난감에 맞아 마도카짱과 미도리짱이 울었는데 씩씩하다니…. 난 참지 못하고 「아드님이 아이들을 힘들게하니, 어머님이 좀 주의시켜주세요! 」라고 말해버렸다. 남의 아들을 혼 내키는 것도, 서로 듣기 껄끄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불편한 일이지만 그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화가 나거나, 기분 나쁜 상황 속에서도 부드럽게, 좋은 면만 골라서 표현하는 일본인들을 많이 봤다. 「일본 사람들은 속을 알 수 없다더니 다테마에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 겉과 속이 다른 것은 이중인격자요, 순수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던 나는 그들이 하는 것처럼 내 본심을 숨기기 시작했다.
결혼과 동시에 시작한 일본 생활이 10 년을 훌쩍 넘어간다.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외국 생활이 외롭고 지칠 때도 많았지만 그런 힘듦이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
그 성장의 하나가 문화에 대한 이해다.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다테마에를 많은 경험을 거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다테마에의 본질은 본심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는 배려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때 타이치군 엄마는 와타나베상의 이야기를 듣고 금방 아들을 제지했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그저 상황에 맞지 않은 칭찬으로 들었는데 말이다. 외국인인 나는 나의 방식으로 이해했고,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소통한 것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몇 살이세요? 」 한국 사람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묻는다. 「몇 년생이세요? 」, 「몇 학번이세요? 」 덜 직접적인 표현도 있지만 결국 상대방의 나이가 알고 싶은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묻다니…」실례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퍽 많을 듯하지만 유교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한국인들에게 나이란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냐 적냐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지고 어법도 달리해야 한다. 오죽하면 몇 초 간격으로 태어난 쌍둥이끼리도 위아래를 정해 호칭을 달리할까.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알면 첫 만남에 나이를 묻는 한국인의 무례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경 올림픽이 코앞이다. 우리 주변 어디서나 외국인을 볼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하면 언제라도 세계 여러 나라의 친구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공부는 물론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는 만큼 느낄 수 있고, 느껴야 함께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文珉貞(ムンミンジヨ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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