幼いころのお正月は,数日前からの指折り数えて待つ楽しい行事だった。
普段見られなかった親戚たちが集まるのはもちろん,「トックック(お雑煮) 」をはじめとするおいしい料理,さらに日本のお年玉のような大人が渡す「セベトン」が待っているためだ。
朝,目を覚ますと,真冬の青空とそれに似合う寒さで正月が始まった。 大人もこどもも皆,韓国の伝統衣装である「ハンボク」を着て先祖に「チャレ」という儀式を行う。
チャレをするときは「チョル」という辞儀を行うが,女性の場合,手を組んでひざまずいて座り,上体を45度ほど前に曲げてあいさつをする形式だ。
これは先祖への感謝の儀であるため、厳粛な雰囲気の中で行われるが,寺に慣れていない子どもたちは,たまに後ろに転んだりして笑いの場になることもある。
「チャレ」が終わると,子どもたちは並んで大人に「セベ」と言う「チョル」をする。 「いつ私の番が来るんだろう?」と思いながら…。
その後朝食のテーブルに並ぶ代表的な食べ物が「トックック」。 日本のお雑煮にみたいな食べ物だ。「トック」はモチ「クック」はスープを意味する。 長い棒のような形をしたうるち米粉で作った餅を斜めに切って煮る。
韓国では「トックック」を一杯食べるとすなわち年をとることを意味する。 幼い頃,早く大人になりたくて「トックック」を2,3杯食べた経験は,多くの韓国人が持っている思い出だ。
ソウルで仕事をする20代の正月は,帰省でいつもつらい記憶が残った。 高速バスなら2時間30分なら行く故郷をいつも20時間以上かけて行った。 高速バスも列車もチケットを手に入れることが難しく,同じ方面の同僚と一緒に帰郷してはいたが,25時間運転をしていた職場の同僚の足に痙攣が起きたときには運転ができない私はとても申し訳なかった記憶もある。
今年の韓国のお正月は2月5日。旧暦で数えるため,毎年の日付が異なるが,大体2月の初め頃だ。 幼い頃はただ楽しかっただけで,母の苦労が分からなかった。 あれだけ多くの親戚たちの食べる物を全部作る事は大変だったはずの母。
世の中が変わり,お正月に海外旅行に行く人々も多くなり,料理を買って食べる人々も増えた。 それでも多くの人々は,相変わらず家族に会う喜びのために長い時間の渋滞もいとわず,故郷へ向かう。
今、私は日本で生活をしているため,お正月が来てもただ電話で挨拶するしかないが,心はいつでも子供時代にお年玉を期待していたあの頃の少女の気持ちだ。 お母さん! 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そしていつも元気でいてください。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한국의 설날」
어린 시절의 설날은, 며칠 전부터 손꼽아 기다리는 즐거운 명절이었다.
평소에 보지 못한 친척들이 모이는 것은 물론이요 떡국을 비롯한 맛있는 요리 게다가 일본의 오토시다마 같은 어른들의 세뱃돈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한겨울의 파란 하늘과 그에 어울리는 추위와 함께 설날은 시작됐다. 어른, 아이 모두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고 조상들께「차례」라고 하는 예를 올린다.
차례를 지낼 때는 「절」이라고 하는 예를 갖추는데 여자의 경우 손을 포개어 잡고 무릎을 꿇고 앉은 다음 윗몸을 45도쯤 앞으로 굽혀 인사를 하는 형식이다.
이는 선조들에 대한 예이기 때문에 사뭇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데 절이 익숙지 않은 꼬마들은 가끔 뒤로 넘어지기도 해 웃음바다를 만들곤 했다.
제사가 끝나면 아이들은 줄을 서서 어른께 「세배」라고 하는 절을 드린다. 「언제 내 순서가 올까? 」생각하면서….
그 후 아침을 먹는데 아침상에 올라오는 대표적 음식이 「떡국」. 일본의 오조니격인 음식이다. 떡은 모치 국은 수프를 의미한다. 기다란 봉처럼 생긴 멥쌀가루로 만든 떡을 어슷썰기 해서 끓인다.
한국에서는 떡국을 한 그릇 먹는 것이 곧 나이를 한 살 먹는 것을 의미한다. 어릴 적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떡국을 두세 그릇 먹던 경험은 많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추억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이십대의 설날은 귀성으로 늘 힘든 기억이다. 고속버스로 2시간 30분이면 가는 고향을 늘 20시간 이상 걸려서 갔다. 고속버스도 기차도 표를 구하기 힘들어 방향이 같은 동료들과 함께 귀향하고는 했는데 25시간 운전을 하던 직장동료의 발에 쥐가 나서, 운전을 못하는 나는 너무 미안했던 기억도 있다.
올해 한국의 설날은 2월 5일. 음력으로 세기 때문에 매해 날짜가 다르지만 대략 2월 초순경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즐거웠을 뿐 어머니의 고단함을 알지 못했다. 그 많은 친척들의 먹을 것을 다 만드시느라 힘드셨을 어머니.
세상이 바뀌어 설날에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고, 음식을 사서 먹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가족들을 만나는 기쁨에 긴 시간 정체도 마다하지 않고 고향으로 향한다.
일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설날이 돼도 그저 전화로 인사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은 항상 어린 시절 세뱃돈을 기대하던 그 때의 소녀의 마음이다. 어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항상 건강하세요.
文珉貞(ムンミンジョン)
韓国の大田生まれ。
大学卒業後出版社の編集デザイナー、新聞社の取材記者として働く。
日本で韓国語教師として働きながら韓国の文化を紹介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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